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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은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국가의 인프라는 심각하게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계기로 인해 한국 경제가 발전하기도 했는데
오늘은 그것 관련해 알아보았습니다.
# 전쟁의 피해 어느 정도였나?
- 공업시설 약 40% 파괴됨
- 발전량 80% 감소
- 한반도 전체 인구의 20~25%가 기아 위기에 직면
- 1949년 1년 국민총생산에 맞먹는 수준으로 국민총생산은 무려 14%가 감소
- 160만 명의 사상자
- 도로, 농업시설, 국토 전체 황폐
# 6.25 전쟁 이후 한국의 발전 배경
6.25 전쟁 이후 한국의 발전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뒷받침됨
- 첫째, 한국 정부는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침
- 둘째, 한국인들은 전쟁의 고통을 겪은 후 더욱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투자함
- 셋째, 한국은 미국과 일본과 같은 강대국의 도움을 받음
# 1960년대
-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10%에 달하게 됨 (간단한 제품을 싸게 만들어 수출)
- 정유 시설, 발전소, 고속도로, 항만 등 인프라 구축
- 1963년도에는 북한의 1인당 GDP도 앞지르기 시작
- 삼백산업을 거쳐 경공업으로 인해 통해 수출량이 크게 증가함
# 1970년대
- 중화학공업(중화학공업은 산업부문간 상호의존성이 높고, 막대한 기술 인력과 고도의 장치가 필요한 산업) 육성을 통해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
- 수출에서 중화학공업의 비중은 1970년 12.8%에서 1980년 41.5%로 급증
- 기계, 선박, 철강 등의 중화학 제품들이 수출의 40~50%를 차지
- 섬유제품은 1973년 단일품목으로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
- 1970년대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도 1977년에는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
# 1980년대
- 정보통신 산업의 발전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에 우뚝 섬
- 전기, 전자, 자동차, 조선, 기계류의 중화학공업 제품이 수출의 50~60%를 차지
- 전기, 전자 분야의 수출이 급증하며 전체 수출의 30%를 점유
- 컬러 TV, 휴대폰,보일러 등 전자제품의 수출은 1980년대 초반 20억 달러에서 1989년 180억 달러를 달성하였으며, 반도체, 컴퓨터, 가전제품 등이 수출 주력 상품이 됨
- 1980년대 중반부터는 자동차의 수출 비중이 높아짐
# 1990년대
- 1990년대에는 1964년 수출 1억 달러를 넘어선 지 31년 만에 1천억 달러를 돌파
- 자동차, 선박, 화학제품, 전기․전자, 기계류 등의 중화학공업 생산품이 수출 주력상품이었다. 이 중 반도체가 수출품목 1위를 차지하고 1994년에는 단일품목으로는 최초로 수출 1백억 달러를 돌파
한국은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1990년대에도 외환위기로 인해 큰 고난을 겪었으나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발전은 6.25 전쟁 이후 한국 정부와 국민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큽니다.
한국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하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영한 국가가 될 것입니다.
한국전쟁은 한국에 많은 아픔을 남겼지만, 또한 많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한국 전쟁을 통해 한국은 국민의 단결, 정부의 지도력, 경제 성장의 중요성을 배웠고, 한국은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더욱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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