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주요 전투 (인천상륙작전,장진호,다부동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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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은 3년 1개월간 계속된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곳곳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아파했다.
수많은 전투들 중 가장 치열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조국수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3대 전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다부동전투 (낙동강방어선의 최대 격전지, 다부동)

  • 1950년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히는 전투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1950년 8월 3일 ~ 29일까지 벌어진 전투

동양의 베르됭 전투라고도 불릴 정도로 치열한 전투로 유명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조선인민궁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적들의 기세를 꺾었다

김일성은 수안보 전선까지 내려와 8.15 광복행사를 기필코 대구에서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북한군 3사단은 성주를, 10사단은 고령, 13사단은 상주로 15사단과 1사단은 각각 선산과 효령으로 투입해 집중공세를 펼쳤다.

55일간의 전투에 대한민국은 국군, 학도병, 노무자를 포함하여 약 2만여 명이 참가하여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북한군은 약 3만 명이 참가하여 1만 7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공세로 전환되자 반격의 계기가 되어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 인천상륙작전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

  •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시작된 상륙작전
  • 6.25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 6월 29일 전쟁이 발발한 지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당하고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기고 말았다. 정부는 대전으로 피신했고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16개국 대표가 모여 회의를 했고 이때 결정된 사항이 유엔군 파평인데 미국 제24사단 소속 스미스 특수임부대가 부산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 됐다.

 

미국 해군은 인천항의 간만의 차가 평균 7미터로,  항구에 상륙하기 전에 월미도를 먼저 점령해야 하는 데다가 선단의 접안지역이 좁아 상륙 후 시가전이 불가피한 점 등의 이유로 상륙작전의 최악의 지형이라며 완강히 반대하였다.

당시 최고 사령관인 맥아더는 오히려 이런 난점이 적의 허점을 찌르는 기습이 될 수 있다며 인천상륙 주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1950년 8월 28일 미국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승인을 얻었다

 1950년 9월 4일 상륙지점인 인천을 고립시키기 위한 공습이 시작되었으며, 상륙 당일인 9월 15일까지 지속되었다.

 

맥아더는 군산에 상륙할 것이라는 거짓정보를 흘렸으며, 이 정보에 속아 넘어간 인민군들은 군산의 방어를 강화하면서 다른 지역의 경계가 허술해졌다.

이 전투에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이 약 7만 5천여 명이 참가하여 8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북한군은 약 1만 명이 참가하여 5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 장진호 전투

  • 6.25 전쟁 시기 함경남도 장진군, 함주군 일대에서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 현대전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대가 제대로 맞붙어 싸운 최초의 전투라는 점에서 의의가 큰 사건
  • 1950년 11월 27일 ~ 12월 11일까지 2주 간에 걸쳐 전개한 철수작전
  • 전투 사상자보다 동사자가 많았던 전투 

장진호 전투는 당시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이 도주해 있던 북한의 임시수도인 강계를 공격하기 위해 함경남도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미군 제10군단 예하 제1해병사단(13000여 명)과 이를 포위한 중공군 제9병단(7개 사단병력 12만여 명)이 1950년 11월 27일부터 무려 17일간 벌인 전투다.

이들의 적은 중공군뿐이 아니었다.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32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인 추위는 중공군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이 전투에는 미해병대 약 2만 5천여 명이 참가하여 4천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중공군은 약 12만 명이 참가하여 5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 전투 목록 정리

  • 본 항목은 나무위키에 등록된 전투만 포함하고 있다. 이 외의 전투들은 6.25 전쟁/관련 기록 항목 참조.
연도
전투
교전국
형태
1950년
옹진반도 전투
대한민국
북한
1950년
대한해협 해전
대한민국
북한 또는 소련
1950년
춘천-홍천 전투
대한민국
북한
1950년
주문진항 해전
UN(미국,영국)
북한
1950년
한강 방어선 전투
대한민국
북한
1950년
동락리 전투
대한민국
북한
1950년
장항-군산-이리 전투
대한민국
북한
1950년
대전 전투
UN(미국)
북한
1950년
청송 전투
대한민국
북한
1950년
다부동 전투
대한민국
북한
1950년
마산 전투
대한민국, 미국
북한
1950년
영천·신녕전투
대한민국
북한
1950년
장사 상륙작전
대한민국
북한
1950년
인천 상륙작전
대한민국, UN
북한
1950년
평양 탈환작전
대한민국, UN(미국,영국)
북한
1950년
초산 전투
대한민국
북한
1950년
장진호 전투
UN(미국, 영국)
중국
1951년
1.4 후퇴
대한민국, UN
중국
1951년
금양장리 전투
UN(터키)
중국
1951년
횡성 전투
대한민국
중국
1951년
지평리 전투
UN(미국, 프랑스)
중국
1951년
설마리 전투
UN(영국)
중국
1951년
파평산 전투
대한민국
중국
1951년
현리 전투
대한민국
중국
1951년
용문산 전투
대한민국
중국
1951년
가칠봉 전투
대한민국
북한
1951년
펀치볼 전투
대한민국, UN(미국)
북한
1951년
피의 능선 전투
대한민국, UN(미국)
북한
1951년
단장의 능선 전투
UN(미국, 프랑스)
북한
1952년
백마고지 전투
대한민국
중국
1952년
저격능선 전투
대한민국, UN(미국)
중국
1953년
폭찹힐 전투
UN(미국)
중국
1953년
금성 전투
대한민국
중국